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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서세옥의 <사람들>

정호경

정호경 / 경기도 고양시


주위를 둘러보니 바로 앞에 아들이 앉아 있다. 며칠 전 공들여 만든 레고총의 실제 모델을 인터넷에서 찾아 스케치하는 중이다. 색연필을 쥐고 갈색과 회색으로 번갈아 칠하는 표정이 진지하다. 방문 너머로는 딸이 영어 문장을 읽는 소리가 들린다. 영롱한 울림이 귓가를 맴돈다. 두 아이 사이에 있다는 것은 이렇게 모든 감각을 동원하여 그들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일인 것 같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 그들은 누구이며 그들의 범위는 어디까지 일까? 나비의 날갯짓이 태풍을 일으킬 수 있음을 깨닫는다면 한 사람으로 존재하는 것이 또 다른 사람들에게 무슨 의미인지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서세옥, 사람들, 1986, 한지에 수묵담채, 260×164cm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 그들은 누구이며 그들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나비의 날갯짓이 태풍을 일으킬 수 있음을 깨닫는다면 한 사람으로 존재하는 것이 또 다른 사람들에게 무슨 의미인지도 알수 있을 것이다.

서세옥이 그린 <사람들>이다. 그의 그림은 동양화 전통에 뿌리내리고 있으면서도 서양화의 비구상적인 요소들을 자유롭게 사용한다. 한지 위에 먹으로 표현된 점과 선의 변주들은 그의 예술 철학을 사람에 관한 사색과 함께 더욱 본질에 다가가는 작품으로 형상화한다. 단숨에 그린 몇 획은 다양한 층의 농담으로 스며들어 사람이 되고, 넉넉한 여백은 사람들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홀로, 때로는 둘이서, 아니면 그 이상으로 끝없이 이어진 사람들은 그림 안에서 서로 기대고, 손을 잡고, 어깨를 나란히 하며 층층이 쌓이기도 하고, 함께 춤을 추기도 한다. 감상하고 있자면 복잡한 생각을 단순한 모양으로 정리해주기도 하고 단순한 그림으로부터 복잡한 생각을 시작하게 하기도 한다. 사람을 잡지도 놓지도 않는, 아니면 잡기도 하고 놓기도 하는 이런 그림이 참 좋다. 특히 <사람들>은 한 사람이 집의 형상이며 좋은 생각이 거주하는 이런 집들이 연이어 지어져 감으로써 동네가 되고 사회가 되고 결국 좋은 나라가되는 꿈을 꾸게 한다.

서세옥이 그린 사람들을 보며 그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시인 고은의 연작 시집『 만인보』가 떠올랐다. 제목을 그대로 풀면 만인의 계보이다. 시인 자신은 ‘내가 이 세상에 와서 알게 된 사람들에 대한 노래의 집결’이라고 설명한다. 시인에게 가장 암흑 같았던 시절, 이 시집은 구상된다. 1986년 연재가 시작된 이 연작시들은 2010년 4월에 30권으로 완간되었고, 총 작품 수 4,001편, 등장인물은 5,600여 명이라고 한다. 세계 최초로 사람만을 노래한 연작시로도 유명하다.

특히 작가가 유년 시절부터 만난 개별적인 인물들을 실명(實名)으로 다루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혼자 있으면 ‘나’라는 말도 필요 없으며 ‘관계가 우리 삶의 총칭’이라고 시인은 말한다.

<만인보(萬人譜)> 서시

 

고 은

 

너와 나 사이 태어나는

순간이여 거기에 가장 먼 별이 뜬다

부여땅 몇천 리

마한 쉰네 나라 마을마다

만남이여

그 이래 하나의 조국인 만남이여

이 오랜 땅에서

서로 헤어진다는 것은 확대이다

어느 누구도 저 혼자일 수 없는

끝없는 삶의 행렬이여 내일이여

 

오 사람은 사람 속에서만 사람이다 세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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